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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66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이 "하나의 민족"이 아닌 이유

1. 우크라이나인은 자신을 러시아인과 별개의 독립된 다른 민족으로 식별한다.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로루시인을 포함하는 3 국가의 “하나의 민족” 내러티브는 러시아 제국이 키이우 루스의 이전 영토를 정복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다른 민족의 국가 정체성을 파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나중에 이 내러티브는 "형제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변형되었다. 두 내러티브 모두 근거가 없으며, 푸틴의 발언들에서 볼 수 있듯이 오늘날까지 러시아의 외교 정책을 형성하고 있는 러시아 제국주의적 야망을 나타낸다. 2. 우크라이나인들은 16세기의 코자크 국가부터 1917년의 우크라이나국, 1991년에 독립 선언에 이르기까지 오랜 독립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인들은 무기뿐만 아니라 말로도 독립을 위해 싸웠다. 수..

전쟁 2023.03.22

러시아가 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거짓말

전쟁의 9년, 본격적인 침공의 1년 전 세계는 우리가 몇 주 안에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1년 넘게 굳건히 버티고 있다. 세상은 왜 우리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우리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날 중 하나인 2022년 2월 24일에 산산조각이 난 러시아의 거짓말, 식민주의적 사고 및 오해 거짓말 #1 «형제 민족» 또는 «같은 민족» 망상에 사로잡힌 러시아 식민지 개척자들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자신의 나라에서 이류 시민이 기쁘게 될 것을 진심으로 믿었다. 큰 실수다. 우크라이나인들은 국가를 옹호하여 옳은 것을 위해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는 분명하다: 러시아인들은 집회에서 경찰이 할머니를 때리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는 반..

전쟁 2023.03.21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은 한국분들께 자주 듣는 질문에 대답했다

전쟁의 9년, 본격적인 침공의 1년이 됐습니다. 한국말로 블로그를 운영한지 거의 1년입니다. 그동안 궁금해하셨을만 한 점들에 대한 설명을 준비했습니다. 한국사람들에게 우크라이나 뉴스를 전하는 이유 너무 아쉽게도 많은 한국인분들은 러시아의 선전을 믿고 사실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일부라는 것,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는 차이가 없다는 것, 우크라이나에 나치 문제가 있다는 것 등을 자주 듣게 됩니다. 저희는 이러한 주장들은 거짓이라는 것을 알리고 우크라이나에 대해 더 많은 현실적인 정보 제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실제 정쟁이 있듯이, 정보 전쟁도 존재합니다. 러시아는 러시아에게 유익한 네러티브와 프로파간다를 파뜨리기 위해 오랫동안 힘과 돈을 썼습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사실..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의 서울 집회 (2023.02.19) [사진 모음]

2월 24일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 끔찍한 침공을 시작한 지 1년이 된다. 비극적인 날짜를 맞이하여 지난 일요일 (2월 19일)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은 또 다시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전쟁 반대 시위를 나갔다. 우리가 지난 해부터 지속적으로 집회를 여는 이유는 내 친구 키이우 출신 올랴가 연설을 하며 분명히 설명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여기서 1년째 시위를 하는데 매번 “왜 한국에서 이러냐”라는 질문을 받아요. 그 이유를 한번 설명해 드리고 싶습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리마인드입니다. 러시아인들이 주권 국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주권 국가의 영토를 점령하려고 합니다. 러시아인들이 매일 우크라이나를 파괴하고 민간인까지 계속해서 우크라이나사람들을 학살합니다. 이런 상황에 대한 리마인드..

"우크라이나에서 온 메시지": 젤렌스키 대통령 연설문집 [책 리뷰]

“우크라이나에서 온 메시지”는 미국 의회와 유럽 의회 등 국제 기구에서 박수갈채를 받은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연설 문집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직접 연설문을 고르고 서문을 썼다. 책이 여러 국가에서 출판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다. 이 책에는 2019년 5월 20일 대통령 취임사 연설부터 2022년 8월 24일 우크라이나 독립기념일에 맞이해서 한 연설까지 포함되어 있다. 3년 3개월이라는 기간의 연설을 통해서 우크라이나인들의 삶과 역사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전면전이 시작한 후에 우크라이나 학생과 과학자, 교사와 의사, 예술가와 농부, 자원봉사자와 군인들, 모든 사람들은 힘을 합쳐서 침략자들에게 강렬한 저항을 보여줬다. 이렇게 자유를 무엇보다 중요시하고 불굴의 투지와 힘을 ..

도서리뷰 2023.02.10

러시아 점령의 방식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인구의 "권리 보호" 러시아는 2014년 이후 점령된 영토에 러시아군이 주둔하고 있는 것을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인구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강제 조치"라고 불렀다. 러시아는 크림 반도, 몰도바, 조지아, 체첸에서 전쟁을 도발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동일한 핑계를 사용합니다. 국제법과 규범의 위반 침략자 국가로서 러시아는 공식 협정을 준수하지 않고 조직적으로 전쟁 범죄를 저지르며 국제법과 규정을 위반합니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를 점령함으로써 우크라이나와의 487건의 협정을 위반했습니다. 그 중 407건은 양자간, 80건은 국제 협정이었습니다. 불법적인 국민투표 트란스니스트리아, 조지아, 크림, 도네츠크, 루한스크 - 러시아는 영토 점령 후 형성된 준국가에서 불법적인 국민투표를..

전쟁 2023.02.03

러시아 선전이 조작한 “우크라이나 나치 문제”

잠깐요, 우크라이나에 나치가 없는 거였어요? 모든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에도 극우파가 있습니다. 하지만 유럽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극우파는 정치적 권력이 없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극우파는 약 2%의 지지율을 받고 있고 의석조차 가질 수 없습니다. 이 수치를 헝가리 (49%), 프랑스 (13%), 이탈리아 (17%), 오스트리아 (26%)와 비교해보면, “우크라이나 나치” 문제는 얼마나 하찮은지 보입니다. 2014년부터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돈바스에서 무력 분쟁을 벌였을 때 극우파 세력도 돈바스에서 러시아에 맞서 싸웠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지키기 위해서 무기를 든 극우파가 러시아 최악의 적이 되었죠.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나치 문제”는 어디에 기반을 두고 있을까요? ____..

전쟁 2023.02.03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 군대를 누가 지도하는가?

러시아는 3일 안에 키이우를 점령하고 합법 정부를 전복하여 가능한 빨리 승리 행진을 벌일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주로 우크라이나 군대와 총사령관 발레리이 잘리즈니 덕분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발레리이 잘리즈니는 국제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면전이 시작된 후 그의 능력이 폭로되어 인정 받았다. 48세의 발레리 잘리즈니는 군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부터 군인이 되고 싶어했다. 그는 군사 분야와 국제 관계 분야에서 총 3개의 학위를 가지고 있다. 발레리 잘리즈니는 2014년 우크라이나 이반 체르냐호우스키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작전 및 전략 훈련의 최고 졸업생으로서 ‘영국 여왕의 검’ 상을 수여받았다. 잘리즈니는 결코 사무실에만 머무르는 군인들 중 한 명이 아니었다. 많은 장교들처럼, 그는 돈바..

전쟁 2023.02.02

솔레다르 소금 광산. 세계 최대의 암염을 생산하는 소금광산 중 한 곳

도네츠크 지역의 솔레다르는 우크라이나 군들이 용감하게 지키고 있는 전선의 가장 치열한 곳 중 하나입니다. 이 도시에 대한 이야기는 국내외 대중매체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근까지 이 도시는 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소금광산 중 하나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럼 유명한 솔레다르 광산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아 보시죠. 전쟁이 시작하기 전에 솔레다르의 인구는 약 11,000명의 주민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중 거의 4,000명이 소금을 생산하는 ‘아르템실’이라는’ 기업 직원이었다. 19세기 후반에 이 지역에서 거대한 암염 매장지가 발견된 후에 산업적 소금 생산은 시작되었다. 1880년대 첫 번째 광산이 열릴 때부터 21세기 초까지 2억 5천만 톤 이상의 소금이 이곳에서 채굴되었다. 1990년대에 288m ..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의 서울 평화 시위 (2023.01.29) [사진 모음]

1월 29일,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은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우리는 여전히 한국 국민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다시 한 번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평화시위를 진행했습니다. 러시아의 미사일 테러로 40명 이상이 사망하고 어린이를 포함하여 80명 이상이 부상당한 드니프로에서 온 우크라이나사람들이 연설했습니다. 또한 어제는 우크라이나 역사상 중요한 사건인 크루트의 전투 희생자를 추모하는 날이었습니다. 105년 전 이날(1월 29~30일) 우크라이나 군인과 봉사자들이 키이우에 전진하는 볼셰비키를 며칠 동안 저지했습니다. 거의 10배나 작은 우크라이나 군대는 볼셰비키를 격퇴할 수 있었습니다. 크루트의 전투는 우크라이나 독립을 위한 투쟁에서 젊은 세대의 영웅성의 상징이되었으며,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 침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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